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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녹] 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2021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으로 고독과 죽음의 고통을 겪는 노인들을 위로하고, 신앙의 전수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 노인의 역할과 중요성을 되새기며 그들의 소명을 격려하고자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제정하였다. 한국 교회는 보편 교회와 함께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7월 26일)과 가까운 7월 넷째 주일을 ‘조부모와 노인의 날’로 지낸다(주교회의 2021년 추계 정기 총회).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17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파스카 축제일인 이 주일에 우리를 부르시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을 먹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세상의 빵을 먹으며, 육신과 영혼의 온갖 배고픔을 채우고 이웃과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가집시다.

     

    입당송 시편 68(67),6-7.36 참조

    하느님은 거룩한 거처에 계시네. 하느님은 한마음으로 모인 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시고, 백성에게 권능과 힘을 주시네.

    본기도 

    저희의 희망이신 하느님,
    하느님이 아니시면 굳셈도 거룩함도 있을 수 없고
    하느님만이 저희를 지켜 주시니
    풍성한 자비로 저희를 보살피시고 이끄시어
    저희가 지금 현세의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며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먹고도 남을 것이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4,42-44
    그 무렵 42 어떤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 왔다.
    그는 맏물로 만든 보리 빵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을 자루에 담아,
    하느님의 사람에게 가져왔다.
    엘리사는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하고 일렀다.
    43 그러나 그의 시종은
    “이것을 어떻게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엘리사가 다시 말하였다.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주님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44 그리하여 그것을 사람들에게 내놓으니,
    과연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먹고도 남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시편 145(144),10-11.15-16.17-18(◎ 16 참조)

    ◎ 주님, 당신 손을 펼치시어 저희를 은혜로 채워 주소서.
    ○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
    ○ 눈이란 눈이 모두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은 제때에 먹을 것을 주시나이다. 당신은 손을 펼치시어,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은혜로 채워 주시나이다. ◎
    ○ 주님은 가시는 길마다 의로우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주님은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진실하게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계시네. ◎

    제2독서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4,1-6
    형제 여러분, 1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환호송루카 7,16

    ◎ 알렐루야.
    ○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나셨네.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1-15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4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7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8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주님, 주님의 교회를 굽어살피시어, 주님을 찾고 주님을 바라는 모든 이와 함께 말씀을 듣고 빵을 나누며, 세상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전하게 하소서.

    2. 정치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통치자이신 주님, 이 땅의 정치인들을 굽어살피시어, 국가의 기본법을 언제나 깊이 새기며, 나라와 국민을 위한 일을 할 때 바르게 판단하고 정의롭게 실천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3. 노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인자하신 주님,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맞아 기도드리오니, 그들을 굽어살피시어, 내면의 기쁨과 힘을 잃지 않고 세상 속에서 당당히 생활하여 나가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4. 지역 사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일치의 주님, 저희 지역 사회의 모든 이를 주님의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본모습을 간직하며 이웃들과 함께 화목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예물 기도 

    주님, 은혜로이 내려 주신 예물을 바치오니
    이 거룩한 제사를 받아들이시고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의 힘으로
    저희가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아
    마침내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연중 주일 감사송 6 : 영원한 파스카의 보증>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저희는 주님 안에서 숨 쉬고 움직이며 살아가오니
    이 세상에서 날마다 주님의 인자하심을 체험할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고 있나이다.
    주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셨으니
    성령의 첫 열매를 지닌 저희에게도
    파스카 신비가 영원히 이어지리라 희망하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모든 천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103(102),2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또는>
    마태 5,7-8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으리라.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보리라.

    영성체 후 묵상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늘 안드레아처럼 묻습니다. 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바라는 대로 주시어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예수님의 표징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어떤 고백을 합니까?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성체를 받아 모시며 언제나 성자의 수난을 기념하오니
    성자께서 극진한 사랑으로 베풀어 주신 이 선물이
    저희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오늘의 묵상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이가 가진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장정만도 오천 명’쯤 되는 인원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도 비슷한 상황이 나옵니다. 바알 살리사에서 온 사람이 가져온 보리 빵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 자루를 바라보며 엘리사의 시종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독서와 복음에서 우리의 판단과 생각을 뛰어넘는 일이 일어납니다. 모두 배부르게 먹고도 남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며, 이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가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 소용이 없어 보이는 음식으로 빵의 기적을 이루셨고, 아무 소용이 없어 보이는 십자가 죽음으로 부활의 신비를 드러내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믿음’과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믿음과 마음을 가지게 될 때, 우리 영혼에 생명을 나누는 빵의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십니다. 성체를 모실 때마다 미사 때 선포된 하느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무 소용이 없어 보이는 우리의 삶을 예수님께 봉헌하고, 그분께 감사드립시다. 더불어 가족과 이웃에게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의 생명을 나누어 주는 “생명의 빵”이 되는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아멘.

    (김재덕 베드로 신부)

     

    처: 가톨릭 굿뉴스 & 한국 천주교중앙협의회

     

     

     

     

     

     

     

     

     

     

     

    2024년 제4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교황 담화문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4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담화
    (2024년 7월 28일)

     

     


    ‘다 늙어 버린 이때에 저를 버리지 마소서’
    (시편 71[70],9 참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나이 들고 쇠약해졌을 때에도,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고 사회에서의 역할이 줄어들었을 때에도, 우리 삶이 덜 생산적이고 쓸모없다고 치부될 위험이 있을 때에도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겉모습을 중시하지 않으십니다(1사무 16,7 참조). 하느님께서는 많은 사람의 관심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선택하기를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돌 하나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사실, ‘가장 오래된’ 돌도 ‘새로운’ 돌을 받칠 수 있는 견고한 토대가 되어, 다 함께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는 것입니다(1베드 2,5 참조).

     

    성경 전체는 주님의 신실하신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있더라도 심지어 당신을 배반하여도 언제나 당신의 자비를 보여 주신다는 위로에 찬 확신을 줍니다. 시편은, 우리가 보잘것없어도 돌보아 주시는 하느님 앞에서 인간의 마음이 느끼는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시편 144[143],3-4 참조). 시편은, 하느님께서 어머니 배 속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엮으셨고(시편 139[138],13 참조) 우리의 생명을 저승에서도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라고(시편 16[15],10 참조) 장담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늙어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더욱더 가까이 계실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늙는다는 것은 축복의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시편에서 ‘다 늙어 버린 이때에 저를 버리지 마소서’(시편 71[70],9 참조)라고 주님께 올리는 간청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강하게, 속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기까지 한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십자가에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하고 부르짖으셨던 예수님의 극심한 고통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경에서 인생의 모든 단계에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시다는 확신과 특히 늙었을 때와 고통 중에 있을 때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모순이 없습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성경 말씀이 명백한 현실을 온전히 반영하고 있음을 아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외로움이, 노인이자 조부모인 우리네 삶의 암울한 동반자가 되는 경우가 너무 잦습니다. 제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의 교구장 주교였을 때, 요양원들을 방문하면서 여기서 지내는 이들을 만나러 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수개월 동안 가족들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외로움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많은 곳에서, 다른 어느 곳보다도 가난한 국가들에서 노인들은 혼자라고 느낍니다. 자녀들이 이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 분쟁 상황도 생각해 봅니다. 젊은이들과 성인 남성들이 전쟁에 참여하도록 징집되어 떠나고, 여성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자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고국을 떠남으로써, 많은 노인이 홀로 남겨지는 것입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와 마을에서 많은 노인이 홀로 남겨집니다. 이들은 버림과 죽음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곳들에서 생명의 유일한 징표가 되는 것입니다. 세계의 또 다른 곳에서는, 주술을 사용하여 젊은이들의 생명력을 빼앗으려 한다고 의심하며 노인들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릇된 확신이 일부 지역 문화에 깊이 뿌리내려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죽음이나 질병 또는 어떤 다른 불행이 젊은이들에게 닥쳐오면, 일부 노인들에게 그 죄책을 지우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반드시 맞서 싸워 근절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이러한 근거 없는 편견들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켰지만, 이 편견들은 여전히 젊은이와 노인의 세대 간 갈등에 계속해서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노인이 ‘젊은이의 미래를 훔친다.’는 비난은 요즈음 어디에서나 존재합니다. 가장 발전되고 현대화된 사회들에서도 또 다른 구실 아래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노인들이 필요로 하는 값비싼 사회 복지비로 노인들이 젊은이들에게 부담을 지우고 있고, 이러한 방식으로 노인들이 공동체 발전과 젊은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자원들을 전용하고 있다는 확신이 현재 만연해 있습니다. 이는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인식입니다. 노인의 생존이 젊은이들의 생존을 위험에 빠뜨리고, 젊은이들을 도우려면 노인들을 무시하거나 심지어는 억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대 간 대립 구도는 오류이고 갈등의 문화가 맺은 독이 든 열매입니다. 젊은이들을 노인들과 대립하게 만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조종의 형태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연령대의 일치입니다. 이는 인간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한 진정한 기준점이 됩니다”(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2022.2.23.).

     

    앞서 인용한, 다 늙어 버린 이때에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는 시편은 노인의 삶을 둘러싼 음모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이 말이 과장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외로움과 버려짐은 우연이나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 개개인의 무한한 존엄을 인정하는 데에 실패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개인적 결정들의 결과임을 생각한다면 과장이 아닙니다. 개인은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이나 상태, 상황을 넘어”(교황청 신앙교리부 선언, 「무한한 존엄」[Dignitas Infinita], 1항) 무한한 존엄을 지닌 존재입니다. 이는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를 잊어버리고 사람을 오직 비용 측면으로만 판단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너무 큰 비용이라 지불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도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노인들이 종종 이러한 사고방식의 희생양이 되어 스스로를 짐으로 여기고 먼저 물러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 많은 사람이 가능한 한 독립적이고 다른 사람과 분리된 삶 안에서 개인적 성취를 추구합니다. 공동체 의식은 위태로워지고 개인주의가 찬양받고 있습니다. 곧, ‘우리’에서 ‘나’로의 전환은 우리 시대의 가장 명백한 징표입니다. 우리가 혼자 힘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반박하는 가장 근본적인 논거가 되는 가정마저 이러한 개인주의 문화의 희생양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이 들고 쇠약해지기 시작하면, 우리가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고 사회적 유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개인주의의 환상은 그 본색을 드러냅니다. 실제로 우리는 삶에서 더 이상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이들이 옆에 없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될 때에야 그 모든 것이 필요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슬프게도 많은 사람이 너무 늦은 시점에서야 이를 깨닫습니다.

     

    외로움과 버림은 오늘날 사회적 상황에서 반복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그 근원은 다양합니다. 어떤 경우에 이는 계산된 배제, 일종의 비극적인 ‘사회적 음모’의 결과입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안타깝게도, 한 사람의 개인적인 결정의 문제입니다. 또 다른 경우에는 노인들이 이러한 현실에 굴복하면서 마치 그들의 자유로운 선택인 것처럼 가장하기도 합니다. 점점 더 우리는 “형제애의 맛”(「모든 형제들」, 33항)을 잃어가고 있으며, 대안을 떠올리는 것조차 어려워집니다.

     

    우리는 룻기에서 나이 든 나오미가 남편과 아들들이 죽은 다음 두 며느리 오르파와 룻에게 고향과 집으로 돌아가도록 격려하는 이야기(룻 1,8 참조)에 묘사되는 체념이라는 감정을 여러 노인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노인처럼 나오미는 홀로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다른 어떤 것도 상상하지 못합니다. 나오미는 과부로서 자신이 사회의 시선으로 볼 때 별로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자신과 달리 앞으로 평생을 살아갈 두 젊은 여인에게 자신이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다고 여깁니다. 그러하기에 나오미는 물러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여 젊은 며느리들에게 자신을 떠나 다른 곳에서 미래를 건설하라고 말합니다(룻 1,11-13 참조). 나오미의 말은 분명히 그녀의 운명에 낙인을 찍은 당시의 엄격한 사회적 종교적 관습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성경 이야기는 나오미의 말과 나이 듦 그 자체에 대한 두 가지 다른 반응을 보여 줍니다. 두 며느리 가운데 한 명인 오르파는 나오미를 사랑하지만 그녀에게 입 맞추고 유일한 해결방안으로 여겨지는 이 말을 받아들여 자기의 길을 갑니다. 그러나 룻은 나오미의 곁을 떠나지 않고 나오미를 놀라게 하는 말을 합니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룻 1,16). 룻은 관습과 타성에 젖은 사고방식에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나이 든 여인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감지하고, 두 사람 모두에게,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 될 그 순간에 나오미의 곁에 용감히 남습니다. 고독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생각에 익숙한 우리 모두에게 “저를 버리지 마세요.”라는 간청에 대하여 “저는 당신을 버려두지 않을 거에요.”라는 대답이 가능하다는 것을 룻이 가르쳐 줍니다. 룻은 돌이킬 수 없어 보이는 상황을 타개하기를 망설이지 않습니다. 곧, 홀로 살아가는 것이 유일한 대안으로 남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늙은 나오미의 곁에 남은 룻은 메시아의 조상이 되고(마태 1,5 참조),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이시며 모든 연령대와 생활 신분의 사람들 모두에게 하느님의 친밀함과 가까움을 선사해 주시는 분이신 예수님의 조상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룻의 자유와 용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선택하도록 초대합니다. 우리도 룻의 발자취를 따릅시다. 이 젊은 이방인 여인과 나이 든 나오미와 함께 길을 나섭시다. 그리고 우리의 습관을 바꾸고 노인들을 위한 다른 미래를 떠올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많은 희생이 따르지만 룻을 본받아, 노인들을 돌보는 이들 또는 곁에 더 이상 아무도 없는 친척들이나 지인들에게 날마다 친밀감을 느끼게 해 주는 모든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나오미의 곁에 남기로 한 룻은 행복한 결혼과 가정과 새로운 집이라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늘 그러하듯, 노인들 곁에 가까이 있고 가정과 사회와 교회 안에서 노인들의 고유한 역할을 인정함으로써, 우리 자신도 많은 선물과 은총과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분들을 위한 제4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에, 조부모들 그리고 연로한 가족 구성원들에게 우리의 부드러운 사랑을 보여 줍시다. 기력을 잃고 더 이상 다른 미래에 대한 가능성에 희망을 갖지 못하는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냅시다. 외로움과 버림을 낳는 자기중심적인 태도 대신에 “저는 당신을 버려두지 않을 거에요.”라고 말할 용기를 가지고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의 열린 마음과 기쁜 얼굴을 보여 줍시다.

     

    사랑하는 조부모와 노인 여러분 모두에게, 또한 여러분과 가까운 모든 이에게 저의 기도와 축복을 전합니다. 그리고 부디 잊지 말고 저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를 여러분에게 청합니다.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24년 4월 25일

     

    프란치스코

     

     

    <원 : Message of His Holiness Pope Francis for the Fourth World Day for Grandparents and the Elderly, “Do not cast me off in my old age” (cf. Ps 71,9), 2024.4.25., 이탈리아어도 참조>
    영어 :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en/messages/nonni/documents/20240425-messaggio-nonni-anziani.html
    이탈리아어 : https://www.vatican.va/content/francesco/it/messages/nonni/documents/20240425-messaggio-nonni-anziani.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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